오래되고 방대한 중국 역사 속에서 가장 큰 죄악은 바로 사람을 죽여 그 살점을 먹는 식인(食人)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중국 역사를 살펴보면, 식인에 관련된 기록들이 꽤나 많이 나옵니다. 단순히 형벌로서 식인이 사용된 일도 있으나, 잔인하고 포악한 성격 때문에 식인을 저지른 경우도 있 습니 다. 그런 사례들 중에서 식인으로 악명을 떨친 조사관(趙思綰 ?~서기 949년)이라는 악당도 있 습니 다. (5대 10국 시절 중국의 지도. 후한은 후진을 계승한 왕조였습니다. 5대 10국 시절은 다른 중국사의 혼란기에 비해 짧았으나, 조사관 같은 끔찍한 악당이 출현한 난세이기도 했습니다.) 조사관은 당나라가 망하고 들어선 5대 10국, 후한(後漢 서기 947~951년) 시대의 사람이었 습니 다. 그는 어린 시절,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구걸을 하고 지냈 습니 다. 한 번은 상장군(上將軍) 직위를 지낸 이숙(李肅)이란 사람을 찾아가서 “저는 조사관이라고 합니다. 제가 가난해서 그러니, 하인으로 고용해 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한 일도 있었 습니 다. 하지만 이숙은 조사관을 하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 습니 다. 조사관의 얼굴이 무척 험악하고 사나워보여서, 어쩐지 그에게서 불길한 예감을 느꼈기 때문이었 습니 다. 그렇다고 나쁜 말로 내쫓았다가는 조사관이 앙심을 품을 것 같아서 이숙은 아내인 장씨(張氏)와 상의를 한 끝에 조사관에게 넉넉한 돈과 값비싼 물건들을 가져다주고 “내 집은 이미 하인들이 충분히 많아서 굳이 자네를 고용할 필요가 없네. 다만 자네의 처지가 딱하니, 내가 주는 이 돈과 물건들을 가지고 다른 곳으로 가서 생계 문제를 해결해 보게.”라고 타일러서 돌려 보냈 습니 다. 이숙의 집을 떠난 조사관은 군대에 들어갔는데, 여러 전쟁터에서 용맹을 떨친 공을 인정받아 영흥절도사(永興節度使)라는 관직에까지 올랐 습니 다. 하지만 조사관은 잔인하고 사나운 성격 때문에 평소에도 주위 사람들로...